국어 공부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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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공부 어떻게 할까?

제주도여행in 2007. 5. 18.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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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고용우 선생님 / 강조표시: 와방]

학생들이나 학부모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국어 공부 잘 해요?’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참 난감해진다. 이런 질문을 받고 ‘열심히 하면 돼.’라고 말하는 것은 대답을 안 한 것과 비슷하다. 그런 대답은 곧바로 ‘뭘 열심히 해요?’라는 구체적인 물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글쎄 국어 공부를 잘 하려면 뭘 열심히 해야 할까.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고민과 헷갈림을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몇 가닥으로 요약된다. 늘 쓰는 우리말인데 새삼스럽게 공부를 할 필요가 있는가, 만약 공부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왜 점수는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떨어지는가 하는 문제들을 벗어나는 경우는 크게 많지 않다. 간혹 그 범위를 넘어서는 질문은 ‘우리 애는 책을 열심히 읽는데 왜 시험 점수는 안 좋을까요?’ 와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상담에 가까운 질문들이다.

생각이 막막할 때는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말하자면 어떤 경우에 국어 공부를 잘한다, 혹은 국어를 잘한다고 말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건 너무 뻔해서 시시할 수도 있다. 모든 과목이 마찬가지지만 국어도 시험 점수가 좋으면 공부를 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험 점수 말고 국어를 잘 한다고 할 만한 다른 부분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글쓰기를 잘해서 상을 받는 학생,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는 학생, 문학 작품을 많이 읽어서 문학에 대한 이해가 깊은 학생, 심지어는 그냥 책을 많이 읽는 학생에 대해서도 국어를 잘 한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지금 말한 것들도 점수로 연결되지 않으면 별 볼일 없게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결국 시험 점수만 남는다.

그런데 뻔하고 시시해 보이지만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시험 점수가 좋아야 한다는 말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무슨 시험 점수가 좋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려야 하기 때문이다. 수능 언어 영역 시험도 있고, 논술 시험도 있고, 구술 면접이라는 얘기도 들리고,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학교 시험도 있는데 더구나 학교 시험은 중간 기말 고사에다 수행 평가까지 있어서 어느 점수라고 선뜻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잘하는 놈은 다 잘 한다’고 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언어 영역 점수가 좀 괜찮더라도 글쓰기나 말하기라면 지레 겁을 먹는 사람은 아예 논술이라든가 구술 면접 같은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학교 시험 점수는 좋은데 언어 영역 모의고사 점수는 신통찮아서 고민하는 학생도 있고, 그 반대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학생들도 많다. 물론 약간의 편차는 있어도 골고루 다 잘하는 학생들도 있고, 모든 영역이 다 자신 없는 학생도 있다.

그렇다면 학교 시험, 수능, 논술, 구술 등이 모두 각각의 영역이 있어서 고유하게 독립된 것일까. 물론 대부분의 학원이나 학습지 등은 그렇게 홍보를 하고 있다. 내신 만점을 위한 학습지, 언어 영역 대박을 위한 학원, 통합 논술 학원 등으로 특화시켜서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서너 개의 학원을 다니거나 서너 유형의 학습지를 보거나 해야 하며, 그렇게 한다고 해도 성적이 잘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시험의 유형들은 모두 국어의 범위에 포함되며, 넓게 봐서 언어 능력과 사고력을 측정하거나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세부적으로 그 시험이 그것을 측정하거나 기르는 데 적절한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당연히 언어 능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것으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언어 능력이란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에 문학적인 능력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고력은 생각하는 힘, 생각의 깊이 등을 아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국어 시간에 길러야 할 것은 언어를 통해 세상의 많은 정보와 다른 사람들의 정서를 빨리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인 정보를 통해 생각을 깊게 하고, 그렇게 깊어진 자신의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인 셈이다. 물론 이렇게 간결하게 요약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누적되고 축적되는 성질의 것이다. 식물의 씨앗에서 새싹이 움튼 후 햇빛과 빗물과 땅속의 자양분을 섭취하면서 점점 자라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좀 더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비료를 주고 물을 흠뻑 자주 공급할 수는 있지만 그런 중간 과정을 빼 먹고 꽃을 피울 수는 없는 일이다. 특별한 기술로 씨앗에서 바로 꽃을 피운다 한들 그것은 기형에 불과할 것이다. 아무리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인다고 해도 달걀을 튀겨 후라이드 치킨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사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과의 대화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그들이 뭔가 획기적인 비법을 알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돌보지 않아서 시들시들하지만 물과 비료를 흠뻑 주면 바로 내일이나 모레쯤 꽃이 피게 되는 그런 획기적인 방법은 없는가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없다. 간혹 있는 것처럼 말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학생이나 학부모의 조바심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사기꾼이다.

어디서 출발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듣고 읽는 활동이 세심해야 한다. 정보나 정서를 정확하게 많이 섭취하려면 세심해야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의 신상에 관한 것, 그의 취향, 그의 습관 등 수집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모았을 때 그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좋은데 ‘그냥 느낌이 좋다’ 정도에서 그친다면 그 느낌은 일시적인 것이어서 이내 며칠 후에는 ‘별로 아니다’로 흐지부지 되고 마는 것이다.

말은 귀담아 듣고, 글은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을 때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심지어는 표정과 호흡까지 읽어 내려고 노력하게 마련이다. 이유는 그가 하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다.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면 그걸 어떻게 읽을까. 한 구절 한 구절 꼼꼼하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속에 담긴 다른 의미는 무엇일까를 탐문하듯이 그렇게 읽는다. 이유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의 마음이 무엇인지 고스란히 읽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듣고 읽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다. 세심하게 다가가야 제대로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속독을 중시하는 경우도 많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속독은 무의미한 노동에 가깝다. 글을 읽는 목적은 내용을 아는 것이지 빨리 읽어 치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친구들과 연예인에 대하여, 스포츠 스타에 대하여, 시사 문제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된다. 이런 대화와 토론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내 생각을 수정할 수도 있다. 이런 토론의 과정은 말싸움 혹은 감정싸움 비슷하게 진행 될 수도 있지만 결국 대상을 좀 더 온전하게 이해하는 방법이면서 생각을 키우는 길이 되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생각을 키우는 문제, 생각을 넓히는 문제에 대해 더 고민을 해 보자. 생각은 어떻게 넓고 깊어질까. 출발은 호기심이다. 무엇에 대한 호기심은 그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뛰어들게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에 대한 호기심은 그 스포츠에 대해 열심히 탐구하게 하고, 마침내 남들보다 그 분야에 대한 더 많은 식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라든가, 연예인이라든가, 특정한 취미라든가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는 있지만 한 분야에 대한 집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 있어서 한 분야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머물렀을 때는 폭넓은 생각을 하기 어렵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사람에 대한 호기심, 자연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으로 확대 되었을 때 생각은 제대로 깊어지는 것이며, 이런 것들과 병행했을 때 자기가 집착하는 분야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읽는 것은 가장 쉽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내가 몰랐던 사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폭넓은 통로는 글과 책이다. 그래서 글 읽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글과 책을 덮는 것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덮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을 깊고 넓게 하지만 언어활동은 표현으로 마무리된다. 혹은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기도 하다. 친구와 둘이서, 혹은 몇몇 친구들이 모여서 대화하는 것도 언어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어 시간에 관심을 기울이는 언어활동은 직접 대면하지 않는 누군가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한다. 혹은 주고받는 대화만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해서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나만 아는 무엇을 누군가에게 잘 설명하는 것,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 내가 느낀 감동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 등이 국어 시간에 다루는 언어활동이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이런 언어활동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생이 되면 그만큼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축된다는 사실이다. 초등학생들은 생각은 깊지 않지만 물음에 또박또박 답을 적고 발표도 참 잘 한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서로 답하겠다고 ‘저요, 저요’난리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중학교에 이르면 발표하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어진다. 고등학교에서는 침묵하거나 ‘저요, 저요’ 대신에 ‘쟤요, 쟤요’로 바뀐다. 발표하는 것이 하찮아진 것이다. 물음에 대한 답을 적더라도 핵심만 간단하게 적는다. 이러다가 어느 날 단기 속성으로 논술을 하고, 구술 면접 준비를 하겠다고 야단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학교에서 치르는 중간 기말 고사를 벼락치기로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평상시의 수업 시간에 그런 활동들이 누적되어 있다면 벼락치기가 통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불가능한 것이다.

표현은 분명하고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에서 출발한다. 말을 할 때, 물음에 대한 답을 적을 때, 주어와 서술어가 있는 온전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길러져야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오가는 대화중에 가장 흔한 것은 일테면 이런 것이다.

학생: 샘, 저 오늘 야자... 교사: 야자가 어떻게 됐는데. 학생: 배가 아파서.. 교사: 배가 왜 아픈데. 학생: 점심시간에.. 교사: 점심시간에 뭘. 학생: 체한 것 같아요. 교사: 그래서? 학생: 집에 가면 안 돼요? 교사: 집에 가서 뭐 할래. 학생: 약 먹고 좀 쉬려고요. 교사: 꾀병 아냐?

이 이야기는 대 여섯 차례 문답이 오간 후에 상황이 판단된다.  물론 담임은 학생이 교무실 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왜 오는지 짐작을 하지만 이런 지루한 문답 끝에 짜증만 잔뜩 남게 된다. 학생이 처음부터 이렇게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학생: 선생님, 저 오늘 점심시간에 밥을 급하게 먹었더니 체했는지 속이 영 불편합니다. 자습을 빠지고 집에 가서 약 먹고 좀 쉬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접근하는 학생 앞에서 교사는 짜증을 부리거나 꾀병을 의심하거나 할 여지가 별로 없다. 논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이런 수준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말재주’, ‘글재주’라는 말처럼 말과 글을 특별한 재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언변이나 문장력이 특별히 뛰어난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수준은 그런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이공계 학과에 진학하더라도 자신의 연구 결과는 논문이라는 글로 표현해야 하고, 이때는 특별한 글재주가 아니라 설득력 있게 자신의 성과를 기술해야 하는 것이다. 국어 시간에 습득해야 할 언어 능력이란 이런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우선은 완결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서는 단락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과 같은 정도는 되어야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왜냐하면’의 내용은 여러 가지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근거인데, 설득력은 풍부한 근거에 의해서 확보되는 것이다. 목소리가 커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근거가 명확하고 풍부해야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너를 사랑해. 진짜라니까, 정말이라니까.’는 별로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그걸 어떻게 믿어?’ 정도의 시큰둥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네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도 듣고 싶고, 예쁜 꽃을 보면 네 생각이 나고,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할 때가 많아.’ 사랑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안 썼지만 이 말을 듣는 상대방은 사랑에 흠뻑 취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표현하는 것은 표현 기법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용과도 관계가 있다. 아는 게 없는데, 말할 것이 없는데 표현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은 아는 것에 자신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금 알고 있거나 대충 알고 있더라도 그걸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서 정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렴풋이 아는 것들은 그걸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적어 보는 과정을 통해서 정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언어활동은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활동이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활동도 될 수가 있다.

다른 모든 능력도 마찬가지지만 결국 표현 능력은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반복할 때 길러질 수가 있는 셈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직접 적어 보는 활동, 대충 적지 않고 처음과 끝이 있는 완전한 문장으로 적는 습관, 근거가 그럴 듯한 한 단락의 글을 완성해 보는 습관, 앞뒤가 있는 한 편의 글을 써 보는 습관,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언어 능력은 시나브로 몸에 배는 것이다. 누군가 특별한 방법으로 주사약을 투입하듯이 그렇게 비법을 전수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만약 그런 방법이 있다고 유혹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사기꾼으로 의심하는 것이 좋다.

결국 국어 실력은 부단한 노동 속에 길러지는 것이다. 공부는 노동이다.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표현하는 부단한 노동 속에 생각이 깊어지고 언어 능력은 길러진다. 다른 사람보다 읽는 능력이 떨어진다면, 말하거나 쓰는 능력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그만큼 덜 읽었거나 덜 세심하게 읽은 탓이며, 표현하기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자기는 타고난 재능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은 게으름을 합리화하기 위한 교묘한 핑계에 불과하다. 수영장 밖에서 물에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으면서 자신이 수영을 못하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국어 공부 어떻게 할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 고용우, 국어교사모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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